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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OTT 플랫폼 티빙(TVING)이 선보인 신작 오리지널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Mary Kills People)’은 한국형 스릴러 장르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미드를 리메이크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과 현실적인 윤리 문제를 반영한 본격 심리 스릴러로 재탄생했다.
특히 주인공 정메리 역을 맡은 이보영과 검사 하준 역의 이민기는 서로 대조되는 캐릭터를 통해 죽음, 정의, 선택이라는 무거운 테마를 다층적으로 풀어낸다.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의사이자 살인자'라는 복합적인 인물 설정,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심리적 갈등, 그리고 현실에서 금기시되던 안락사와 존엄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용기 있는 서사는 단숨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는 원작인 캐나다 드라마 ‘Mary Kills People’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개 방식, 정서적 흐름, 캐릭터 해석 등에서 많은 부분을 로컬라이징하며 새로운 콘텐츠로 재구성했다. 원작은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전개였던 반면, 한국판은 보다 감정적이고 진지한 접근으로, 한국형 감성과 스릴러 장르의 결합이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번 글에서는 ‘메리 킬즈 피플’이 어떻게 성공적인 리메이크를 넘어선 새로운 한국형 스릴러로 자리 잡았는지, 그 서사 구조와 캐릭터 해석, 장르적 확장성을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리메이크를 넘어선 재해석: 한국 사회의 윤리와 정서가 녹아든 서사
‘메리 킬즈 피플’의 원작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과 개인의 존엄한 죽음을 중심으로 한 블랙코미디였다. 그러나 한국판은 그보다 훨씬 무거운 정서와 윤리적 질문을 중심에 둔다. 정메리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환자의 마지막을 도와주는 의사가 아니라,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한국 사회에서 안락사, 존엄사,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법적 허용 여부를 떠나, 죽음을 택한 사람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정메리의 선택과 그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범죄자나 윤리적 일탈자로 그리지 않고, 그녀가 마주한 현실과 감정의 배경을 충분히 쌓아가기 때문에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장에 몰입하게 된다.
원작이 블랙유머와 냉소적인 연출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티빙의 리메이크는 감정선에 더욱 집중한다. 환자들과의 대화,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장면, 그리고 스스로 무너져가는 정메리의 심리는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의 감성적 접근과 맞닿아 있으며, 그로 인해 리메이크가 아닌 새로운 창작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메리 킬즈 피플’은 리메이크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이보영과 이민기, 감정과 이성을 교차시키는 연기의 무게
‘메리 킬즈 피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 중 하나는 주연 배우들의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이다. 특히 이보영은 그동안 쌓아온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정메리라는 복잡한 인물을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정메리는 한편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의사이지만, 동시에 법과 도덕의 경계를 넘는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으면서도,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점점 죄책감에 휩싸인다. 이보영은 이러한 내적 갈등을 과장되지 않게,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풀어냈고,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그녀의 눈빛, 목소리의 높낮이, 손끝의 떨림 하나하나가 정메리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민기가 연기한 하준 검사는 정메리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철저하게 이성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인물이지만, 점점 정메리의 행동과 삶의 태도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를 겪는다. 초반에는 냉정한 수사관으로 등장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정메리의 진심과 마주하며 감정의 균열을 겪는다. 이민기는 이 변화의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고,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대립을 넘어선 인간적인 연대로 진화하게 된다.
두 배우의 연기는 드라마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축이다. 특히 감정이 폭발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대사 없이도 화면을 장악하는 힘을 보여주며, ‘연기력만으로 서사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보영과 이민기의 시너지는 단순히 연기 호흡을 넘어, 작품 전체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중요한 축이다.
한국형 스릴러의 진화: 장르 혼합의 새로운 가능성
한국 드라마에서 스릴러 장르는 오랜 기간 ‘범죄 수사물’이나 ‘살인 추적극’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마스크걸’, ‘사냥개들’ 등 보다 복합적이고 심리 중심의 스릴러들이 등장하면서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메리 킬즈 피플’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확장시키며, 스릴러와 윤리극, 심리드라마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원인 중심의 내러티브를 택했다. 특히 죽음을 둘러싼 가치 판단은 단순히 서사 속 갈등 요소를 넘어서,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인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이런 구조는 기존 스릴러에서 보기 드물었던 접근이며, 한국형 장르 드라마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티빙이라는 플랫폼의 성격도 이 드라마의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지상파나 케이블에서는 제약이 많은 주제들을 보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OTT의 특성이, 메리 킬즈 피플의 독특한 분위기와 장르적 실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작진 역시 “OTT라서 가능한 이야기였다”라고 밝히기도 했으며, 이는 앞으로 플랫폼 중심의 장르 다양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회적 메시지와 리메이크의 의미, 그리고 그 이후
‘메리 킬즈 피플’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리메이크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가 가진 고유의 윤리 문제와 정서적 결을 진지하게 반영한 의미 있는 콘텐츠다. 원작을 바탕으로 하되, 한국의 사회 구조, 가족 중심 문화, 의료 시스템, 죽음에 대한 시각 등을 반영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작품처럼 느껴지게 만든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이 드라마는 죽음과 삶, 도덕과 선택 사이에서 어떤 판단이 옳은가를 관객 각자에게 되묻게 만든다. 의사로서 삶을 구하는 동시에, 고통 받는 환자에게 평온한 죽음을 허락하려는 정메리의 모습은 시청자 각자가 가진 윤리적 기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또한 앞으로의 한국 드라마가 리메이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단순히 설정과 인물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서사 구조 전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완전히 다른 정서를 구축해야만 성공적인 리메이크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 작품은 입증했다. 이로 인해 '메리 킬즈 피플'은 단순한 성공작이 아닌, 장르적 실험과 문화적 해석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진화형 콘텐츠로 기록될 것이다.‘메리 킬즈 피플’은 단순한 미드 리메이크가 아닌, 한국형 스릴러 장르의 새로운 도약점이라 할 수 있다. 이보영과 이민기의 섬세한 연기, 윤리적 긴장감이 녹아든 서사, 그리고 OTT 플랫폼의 자유로운 장르 실험이 어우러져 완성된 이 작품은 2025년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다. 리메이크를 넘어서 원작 이상의 감동과 메시지를 전한 ‘메리 킬즈 피플’. 스릴러 이상의 깊이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은 반드시 볼 가치가 있다.